역사저널 그날 372회 미리보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5 안네의 일기

 

전 세계를 울린 소녀의 기록, 안네의 일기

 

제1차 세계대전 패망 후, 독일을 더 강한

국가로 만들겠다며 국민을 선동한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 히틀러는 대대적인

유대인 학살을 감행했고, 수많은 유대인은

살아남기 위해 몸을 숨겼다. 이때, 한 유대인

소녀가 나치를 피해 은신하는 동안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겼으니. 바로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안네의 일기>다.

2009년, 문학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안네의 일기>. 과연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치는 무엇이었을지,

안네 프랑크가 전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

 

유대인 절멸 작전, 히틀러는 왜?

1933년, 독일의 최고 권력자가 된 히틀러는

1935년 유대인과 독일인을 완전히 구분하는

뉘른베르크 법 제정을 시작으로 유대인

절멸 작전을 벌인다. 과연 히틀러가 그토록

유대인을 싫어했던 이유는 무엇일지, 지금까지

제기된 여러 가설과 함께 알아본다.

이러한 히틀러의 행보를 보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가족과 함께 당시 중립국이었던 네덜란드로

향한다. 잼 공장 별채에 위치했던 안네의

은신처. 과연 안네가 지냈던 은신처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은신처를 본떠 만든

모형과 함께 살펴본다.

 

 

 

 

평범한 10대 소녀, 안네 프랑크

오랜 은신 생활, 작가를 꿈꾸며 일기장 키티에

은신처에서의 일상을 기록한 안네. 그런데,

2018년 안네의 일기 속 숨겨진 부분이 발견됐다?

과연 안네가 일기에 숨겨둔 이야기는

무엇이었을지, 또래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한

10대 소녀였던 안네의 모습을 더 세세하게

살펴보는 시간!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1944년 7월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라디오를

통해 전해진 소식들에 희망을 품은 것도 잠시,

얼마 안 가 발각된 은신처에 안네는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그런데, 은신처가

발각된 것이 다름 아닌 밀고자 때문이었다?

모두를 놀라게 한 밀고자의 정체는?

 

안네의 마지막 순간

1944년 8월 4일, 은신처에 들이닥친

나치 친위대와 네덜란드 경찰에 붙잡힌 안네는

결국 베르겐 ‧ 벨젠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는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수많은 혐오들, <안네의 일기>가 시간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 8월 7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372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⑤ <안네의 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2년 8월 7일 21: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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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371회 미리보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4 베를린 장벽 붕괴된 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 그 기록에 대한 이야기

1989년 11월 9일, 동서독을 가로막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관련된 기록물이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세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된다.

세계기록유산의 영어 원문은 세상의 기억

(Memory of the World). 그 뜻에 걸맞게

기록유산은 문서화 된 기록뿐만 아니라 사진,

영상 자료도 포함한다. 베를린 장벽의 축조와

붕괴와 관련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총 15개의 기록물. 장벽이 세워지고

무너지기까지의 과정을 기록유산을 통해 살펴본다.

 

 

 

 

바나나로 방위를 측정하는 법?

1949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1961년까지

서독으로 넘어간 동독 주민은 약 270만 명.

동독 사람들의 가장 큰 탈출 이유는 바로

‘경제’였다. 자본주의 체제였던 서독과 달리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했던 동독. 특히 동독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서독으로 탈출하는

인구가 증가하자 동독 정부는 동서독을 가로막는

장벽을 세워 더 이상의 탈출을 막았다. 그 이후

동독의 경제는 성공적이었을까? ‘베를린 장벽에

바나나를 올려놓으면 베어 먹히는 쪽이

동쪽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서독의

경제 차이는 더욱 두드러졌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서베를린의 한 백화점에서

발표한 동독인의 쇼핑리스트를 통해

당시 동독의 경제에 대해 알아본다.

 

베를린 장벽, 그것이 궁금하다!

베를린 장벽, 우리나라의 38선과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베를린은 동독 안에

위치했는데 그 사이를 반으로 갈라 왼쪽은

서베를린, 오른쪽은 동베를린이 되었다.

서베를린과 동독 지역, 동베를린을 가르는

반원 형태의 장벽이 바로 베를린 장벽!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베를린 장벽이

벽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 무려 네 차례에 걸쳐

견고하게 진화한 베를린 장벽의 구조를

낱낱이 공개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실수

1989년 11월 9일, 동독 공산당의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유로운 여행을 원하는 동독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여행요건 완화를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샤보브스키의

발언에 전 세계가 떠들썩해진다. 그리고 그날 밤,

TV를 보던 동독인들은 베를린 거리로 뛰쳐나와

장벽을 부수기 시작한다. 독일 통일의 결정적

그날이 된 샤보브스키의 말실수는 7월 31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371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④

<베를린 장벽 붕괴된 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2년 7월 31일 (일) 오후 09: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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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저널 그날 370회 미리보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③

제1차 세계대전 선전포고문

 

▶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한 장의 문서?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유럽에서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 전쟁 기간은 4년 4개월,

총 32개 나라에서 15억 명이 참전한 대규모 전쟁.

산업혁명의 여파로 발전된 무기의 등장은

전쟁에서 1,600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참상으로 이어졌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국제전,

1차 세계대전이 오스트리아에서 작성된

단 한 장의 문서로 시작되었다는데...

세계사를 뒤흔든 전쟁의 서막! <역사저널 그날>

370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 번째 시간

<1차 세계대전 선전포고문>에서 알아본다.

 

 

 

 

▶ 우연의 연속, 사라예보 암살 사건

오스트리아 황위 계승자였던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를 열아홉 살의

한 보스니아 청년이 암살했던 '사라예보 사건'.

교과서로 배웠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단’이 된

이 사건이 사실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데.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살 수 있었던 기회가

무려 4번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우연의 연속. 그날의 사건이 ‘그날’에서

미니세트로 재현된다.

암살 이후, 황위 계승자를 잃은 오스트리아는

선전포고하기에 앞서 세르비아에 최후통첩문을

보낸다. 암살은 보스니아에서 일어났는데

오스트리아는 왜 세르비아에 최후통첩문을

보냈을까? 당시 오스트리아와 보스니아,

그리고 세르비아 사이의 국제 관계를 알아본다.

 

▶ 일촉즉발의 위기, 최후통첩문

다민족으로 구성된 오스트리아. 그중에서도

세르비아는 독립운동에 가장 열심인 나라였다.

세르비아가 원했던 것은 오스트리아에서

빠져나와 ‘대 세르비아’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를 돌연

합병해버린 것. 선전포고문 뒤에 숨겨진 각국의

사정을 보스니아에서 온 디나가 내부자의

시선으로 설명한다.

선전포고문은 단 한 장이지만 그전에 전달 된

최후통첩문은 10개의 요구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전포고문만으로 알 수 없는 전쟁의

발단을 알려줄 중요한 열쇠인 최후통첩문.

독일어 원문으로 작성된 최후통첩문을

다니엘이 직접 들려준다.

 

▶ 전쟁터에 가는 병사들

그런데 ‘파리로 소풍 간다’고?

 

1914년 7월 28일. 사라예보 사건이 있은 지

한 달 후 선전포고와 함께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독일과 러시아도 잇따라 총동원령을

발표하면서 각국의 청년들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전쟁에 나서는 병사들의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 없다. 오히려 환한 미소로 전쟁터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탄다. 병사들이 탄 기차에는

'파리로 소풍 간다'고 쓰여 있기까지.... 당시

유럽인들이 전쟁에 환상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그날! 7월 24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370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1차 세계대전 선전포고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KBS 1TV 7월 24일 저녁 9시 40분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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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저널 그날 369회 미리보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② 무예도보통지

 

세계기록유산, 무예도보통지

2017년, 북한의 신청으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무예도보통지. 한‧중‧일 서적 145종을

참고하여 만든 무예도보통지는 동아시아의

무예를 집대성한 무예서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런데,

세계기록유산 등재 당시 북한이 내세운 주장들이

흥미롭다.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이 태권도의

원형이라는 주장과 책 속의 그림을

단원 김홍도가 그렸다는 북한 주장의 진실은?

무예도보통지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를 알아보는 시간!

 

 

 

 

정조가 이룬 사도세자의 꿈?

1790년, 즉위 14년 만에 무예서 편찬을 명한

정조. 이러한 선택의 배경에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월도를 다루고 18가지의

무예를 정리한 <무예신보>를 편찬하는 등 무예에

조예가 깊었던 사도세자. <무예신보> 속

18가지 무예에 6가지 무예를 더한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에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나가고자 하는 정조의 효심이 담겨있었다.

척계광의 <기효신서>, 모원의의 <무비지> 등

<무예도보통지> 편찬 이전 나온 명나라의

다양한 무예서들. 이러한 무예서들과 차별화된

<무예도보통지>만이 가졌던 ‘특별함’의 정체는?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영의 무예 교본이기도

했던 무예도보통지! 과연 그 안에는

어떤 무예들이 소개되어 있는지,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와 함께 살펴본다.

 

무예도보통지 편찬,

그 중심에는 서얼 출신이 있었다?!

 

1771년, 서얼들도 벼슬을 할 수 있게 입법화한

서류소통절목을 반포한 정조.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한 정조는

서얼 출신인 무관 백동수, 문관 박제가,

이덕무에게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을 명한다.

군사들뿐만이 아닌 일반 백성들도 무예를

익힐 수 있도록 쉬운 설명으로 무예의 접근성을

높인 무예도보통지. 이렇듯 일반화된 무예로

인해 조선 후기에는 검술을 기초로 한 무용도

유행했다고 하는데... 밀양검무보존회의

검무 시연과 함께 당시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본다!

 

지과위무(止戈爲武), 전쟁을 멈추는 것이 진정한 무예

 

그 어느 때보다 강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던 정조시대. 정조는 <무예도보통지> 속

표지에 ‘싸움을 그치는 것이 참된 무(武)’라는

뜻의 ‘지과위무’ 도장을 남겼다. 정조가 전하는

참된 무예의 정의를 돌아보며 무예도보통지

편찬의 의의와 무예도보통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

7월 17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369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②

<무예도보통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KBS 1TV 7월 17일 일요일 밤 9시 40분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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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368회 미리보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_ 제1편

진짜 이순신의 기록, 난중일기

 

KBS1TV <역사저널 그날>은 7월 10일부터

모두 6회에 걸쳐 <세계기록유산> 시리즈를

방송한다. <세계기록유산>은 훼손되거나

소멸할 위기에 처한 기록물의 보존과 이용을

위하여 유네스코가 선정한, 가치 있고 귀중한

기록 유산을 말한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난중일기>를 시작으로 <무예도보통지>,

<안네의 일기> 등 인류의 소중한 기록 속에

담긴 역사의 그날 속으로 시청자들을 안내한다.

 

▶ 자랑스러운 기록유산, 난중일기

 

조선을 침탈하려는 일본의 야욕에 맞서

조선 수군을 이끌며 23전 23승을 거둔

성웅 이순신. 그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7년 동안 써내려간 <난중일기>는

개인적인 일기를 넘어 세계가 함께 보존해야 할

기록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불패 신화,

이순신 장군이 남긴 13만여 자의 진솔한 기록,

<난중일기>. 그 안에 녹아있는 인간 이순신의

삶을 들여다본다.

 

 

 

 

▶ 명량대첩, 가장 길고 생생한 기록

 

단 13척의 배로 330여 척의 왜군에 승리했던

명량대첩. <난중일기>에는 그날의 기록이 가장

생생하고 길게 담겨 있다. <정유일기>,

<속정유일기> 두 권에 걸쳐 상세히 서술된

그날의 기록. 이른 아침 정찰부대의 보고를 받고

출전하는 순간, 전세가 기울었다가 극적으로

뒤집어지고 마지막으로 승리하는 순간까지.

그날의 일기는 당시 처절했던 전투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실로 천행(天幸)이었다.”

 

▶ 이순신 장군은 최초의 기상캐스터?!

 

‘새벽 2시께 비가 오다 눈이 오다 했다.

오전 8시부터는 바람과 눈이 크게 불어쳤다’.

이순신 장군은 그날의 날씨를 간단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루 동안의 날씨 변화까지 상세히

기록해놓았다. 날씨를 기록하지 않은 날이

42일밖에 안 될 만큼 날씨에 진심이었던

장군 덕에 <난중일기>는 당시 해안 지역의 날씨

변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강아랑 기상캐스터가 전해주는 400여 년 전

장마 특보를 통해 <난중일기>에서 유추해낸

16세기 조선의 장마 상황을 함께 알아본다.

 

▶ 난중일기로 본 이순신 장군 건강검진

 

<난중일기>에는 ‘몸이 불편하다’는

기록만 90회 이상 나올 만큼 이순신 장군의

건강에는 적신호가 켜졌었다. ‘땀을 흘렸다’,

‘배가 아파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와 같이

난중 문진표(問診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구체적인 증상이 서술된 <난중일기>. 당시

장군의 건강은 어땠는지, 구체적인 증상은

어땠으며, 어떤 약을 처방받아 먹었는지,

경희대학교 한의학대학 김남일 교수와 함께

이순신 장군의 당시 몸 상태를 검진해본다.

 

왜군을 상대로 백전백승을 거두며 위기의 조선을

구한 영웅, 성웅 이순신. 그가 쓴 7년의 기록

<난중일기>에 드러난 인간 이순신의 모습은

7월 10일 일요일 밤 9시 40분 KBS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2년 7월 10일 (일) 오후 09: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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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367회 미리보기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진주성 전투

 

▶ 진주시에 〈역사저널 그날〉이 떴다!

 

진주에 <역사저널 그날>이 떴다!

시원한 촉석루의 바람과 진주성 앞을 흐르는

남강의 풍경에 ‘그날’의 식구들도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은 푸르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진주성이지만 430여 년 전 이곳은

임진왜란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무대였다.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 ‘진주대첩’의 성지,

진주에는 가슴 아픈 패배의 역사도 있다?

430여 년 전 진주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처절한 전투. <역사저널 그날> 367회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 진주성 전투에서 알아본다.

 

▶ 진주대첩, 성벽을 사수해낸 진주 군민의 승리

 

부산으로 입성해 한양으로 진격하던 일본군이

진주로 방향을 튼 이유는?

불패의 명장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바닷길을

이용한 보급로가 차단되자, 일본군은

조선 내에서 식량을 조달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목적지는 바로 한반도의 곡창지대 호남!

일본군의 진군 앞에 길목에 선 진주성은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준비한다.

마침내 시작된 전투. 10배 가까운 병력의 차이를

딛고 성내의 조선군, 의병들은 물론

관내 백성들까지 똘똘 뭉쳐 진주성 사수에

나선다. 특히 후에 ‘충무공’의 시호를 받게 될

진주목사 김시민의 활약은 일본의 고전문학과

가부키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는데.

역사에 ‘진주대첩’이라 기록될 제1차

진주성 전투의 전말에 대해 알아본다..

 

 

 

 

▶ 2차 진주성 전투의 최후의 만찬?

 

1953년, 명나라의 참전으로 전황은 변하고.

명나라와 협상 결과에 따라 일본은 남쪽으로

철수하기로 결정한다. 명나라는 철수 중에

절대 약탈을 금지한다고 엄포를 놓지만 일본의

9만 병력은 진주로 향한다. 바로 ‘진주대첩’의

원한을 기억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특명 때문. “진주성의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죽여라”는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다시 진주성은 일본군의 총 끝에 선다.

10배에 가까운 병력 차이에 외부 지원까지

사라져 버린 외로운 성, 진주성. 결전을 앞두고

진주성의 군민들과 군사들이 먹었다고 전해지는

음식은 비빔밥이다. 진주비빔밥이라 이름 붙은

이 비빔밥의 특별한 점은 ‘육회’가 고명으로

올라가고 선짓국이 같이 나온다는 것.

이런 조합이 된 이유를 ‘임진왜란’에서 찾을 수

있다는데. 실제 ‘진주비빔밥’의 유래에서

느껴지는 비장함에 패널들도 쉽사리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고. 2차 진주성 전투 최후의 만찬,

진주비빔밥에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지 알아본다.

 

▶ 진주성 함락 그 후의 이야기

 

1953년 6월, 10일 간의 결사 항전에도 불구하고

2차 진주성 전투는 조선군의 패배로 끝난다.

1차 진주성 전투와 어떤 점이 달랐기에

2차 진주성 전투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본다. 패배한 진주성의 군사들과 백성들은

열린 진주성 앞에서도 결코 무릎 꿇지 않았다.

특히 역사에 잘 알려진 의기(義妓) 논개는

진주의 백성들이 어떤 마음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웠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런

충절을 가진 진주성 백성들의 운명은 너무도

가혹한 방향으로 흐르고 마는데.

전투는 패배했을지라도 나라를 지키려 했던

호국정신은 지지 않았던 진주성 전투.

7월 3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367회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 진주성 전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2년 7월 3일 (일) 오후 09: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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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366회 미리보기

 

한국전쟁 기획,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한국전쟁,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빠른 시일 내에

종전될 것이라는 많은 사람의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의 결사적 항전으로 전쟁은

장기화되고 있다. 이는 70여 년 전, 한국전쟁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개전 초기, 소련의

지원으로 강력한 병력을 갖춘 북한군에 맞서

한국군은 힘겨운 항전을 이어 나가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항하지 않고 목숨 건

전투를 이어간 ‘사람’. 한국전쟁 72주년을 맞아

그 치열한 전장에 있던 사람들을 기억해본다.

 

 

춘천‧홍천 전투, 맨주먹 붉은 피로 나라를 지킨 6사단

 

1950년 6월 25일 새벽, 서쪽 끝 옹진반도부터

동쪽 끝 강릉에 이르기까지, 300km에 달하는

38선 전역에서 북한군의 기습 공격이 시작된다.

개전 3일 만에 서울을 점령당하고,

수원-원주 계선에 도달하기까지

국군 주력 부대의 90%를 격파하려 한 북한군의

계획에 따라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내린 한국군.

그런데 이때 춘천, 홍천 지역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며 북한군의 작전 계획을 어긋나게

만든 한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국군 6사단이다.

전쟁 당시 사용된 무기들과 함께 국군 6사단과,

6사단이 맞서 싸운 북한군 2군단의 전력 차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보는 시간!

압도적 전력 차에도 6사단이 승리를 거둘 수 있던

비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

 

1950년 6월 25일 밤, 부산 인근 해상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선박. 선박의 정체는 바로 북한 해군

육전대 600여 명을 태운 무장 수송선이었다.

이때, 1,000톤급의 거대한 무장 수송선을

막아선 450톤급의 작은 함선.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이었다.

한국군의 퇴로이자 후에 UN군의 교두보 역할을 한

부산을 지켜낸 대한해협 해전의 승리를 이끈

백두산함! 배를 사기 위해 모금 운동을 벌이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장비를 마련한 해군들.

한국전쟁 발발까지 채 하루도 남지 않은 시점에

한국에 도착하게 된 백두산함의 운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의

A부터 Z까지 알아보는 시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 이름에게

 

모두가 빠른 종전을 예상했지만, 누구도 투항하지

않고 악착같이 버텨낸 한국군.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한국전쟁 속 한국군의 목숨을 건

전투와 그 가운데 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 6월 26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366회 한국전쟁 기획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2년 6월 26일 (일) 오후 09: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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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365회 미리보기

 

유네스코 세계유산 아시아③

인도 타지마할

 

▶ 샤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 타지마할

 

16세기부터 인도 지역을 통치한 이슬람 왕조,

무굴제국. 그리고, 데칸고원 남부까지 영토를

넓히며 무굴제국을 번영으로 이끈 제5대 황제,

샤자한(Shah Jahan)! 샤자한은

황비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인도 최고의 건축물인 ‘타지마할’을 축조한다.

무덤이지만 궁전같이 화려한 외관을 가진

타지마할은 1983년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될

만큼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타지마할에 얽힌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이 있다는데...?! 샤자한 황제가 사랑하는

황비를 잃은 그날, 그리고 타지마할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아시아③’, <역사저널 그날 365회

- 인도 타지마할> 편에서 알아본다.

 

 

 

 

▶ 무굴왕조의 궁정 예술, 까탁(Kathak) 댄스

 

인도 중부와 북부의 힌두 사원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신의 이야기를 춤과 노래로 전하던

이야기꾼들(Kathakars). 대부분 이슬람교도였던

무굴제국의 황제와 귀족들은, 이들이 보여주던

힌두교 성격이 물씬 나는 까탁(Kathak) 댄스에

매료되어 궁정 예술로 편입시키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왕족들은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직접 까탁 댄스를

추며 즐기기도 했다는데... 화려한 의상과

더불어, ‘궁그루’라 불리는 황동 방울을 발목에

달고 발을 구르는 무굴왕조의 궁정 예술,

까탁 댄스! 라스 인도 무용의 댄서들과 함께

인도 전통 무용, 까탁 댄스의 매력에 빠져본다.

 

▶ 힌두의 나라에서 꽃피운 이슬람 건축물

 

아는 만큼 보이는 건축물, 타지마할! 모르고 보면

흰색 건축물에 불과하지만, 곳곳에 새겨진

문양과 배치에는 나름의 상징과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이슬람 왕조에서 만들어, 이슬람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타지마할. 우상숭배를 금하는

이슬람의 교리에 따라 타지마할의 장식은

‘아라베스크’라는 기하학 문양과 ‘천국(Paradise)’을

상징하는 코란 경전의 메시지를 새긴

캘리그라피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벽에

동식물을 새기는 것을 금하는 이슬람의 교리에

어긋나게, 타지마할 곳곳에는 꽃무늬가

빼곡하게 수놓아져 있다는데... 타지마할에

나타난 종교적 절충의 흔적을 알아본다.

 

▶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코이누르의 저주

 

죽은 황비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건축한 세기의 사랑꾼, 샤자한. 그는

타지마할 건축비의 2배를 들여, 본인을 위한

‘이것’을 제작한다. 바로, 루비,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진주 등 각종 보석을 230kg이나

촘촘히 박고, 그것도 모자라 1톤이 넘는 금을

사용하여 황제의 ‘공작 왕좌’를 제작한 것.

의자의 꼭대기에는 특별한 다이아몬드 장식이

있었는데, 바로 ‘빛의 산’이라는 뜻의

코이누르(Koh-I-Noor) 다이아몬드였다.

 

무려 186캐럿에 달했던 코이누르 다이아몬드에는

무시무시한 저주가 깃들어 있었는데, 바로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를 소유하는 사람은 세계를

지배하지만, 가장 최악의 불행을 경험한다’는 것!

과연 이 저주는 진짜였을까? 저주를 극복하고

결국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를 소유한 자는 누구일까?

 

샤자한 황제의 아내를 향한 사랑의 결정체,

인도 타지마할. 그것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방송일시 6월 19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365회

‘인도 타지마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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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364회 미리보기

 

유네스코 세계유산 아시아②

중국 만리장성

 

▶ 중국의 랜드마크! 만리장성萬里長城

세계 7대 불가사의이자 매년 천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 만리장성! 중국 고대 문명의

찬란함을 자랑할 뿐 아니라 건축학적 완벽성을

갖춘 걸작으로 인정받아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건설돼 온 중국의 상징 만리장성.

그런데 만리장성은 정말 만 리일까? 우리는

만리장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중국 농경민족과 북방 유목민족의 수천 년에

걸친 충돌과 전쟁의 역사를 증언해온 만리장성.

<역사저널 그날> 364회 유네스코 세계유산

아시아 두 번째 시간 <중국 만리장성>에서 알아본다.

 

 

 

 

▶ 장성이 세워진 이유, 흉노대제국

전국칠웅의 치열한 싸움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진(秦). 황제가 된 진시황은 지무사방

민무이국(地無四方 民無異國)을 선언했다.

황제의 땅은 경계가 없고, 백성에게 진나라 이외의

나라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랬던 진시황이

스스로 성벽을 세워 땅에 경계를 설정한다.

이유는 바로 호(胡), 즉 북방 유목 민족인

흉노 때문이었다. 진시황도 긴장하게 만든

흉노의 2대 선우 묵특은 강력한 리더십과

충성스러운 정예부대를 바탕으로 흉노대제국을

수립했다. 흉노가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일까? 무기와 전술 전문가 박금수 박사와

함께 알아본다.

 

▶ 진시황의 폭정이 만들어낸 작장면(炸醬麵)

천하를 호령한 진시황은 문자·도량형·화폐를

통일하며 제국의 기틀을 다졌지만, 무리한

토목공사와 엄격한 통치로 민생을 고달프게 했다.

만리장성 축조에 남편을 빼앗긴 수많은 여인들의

한이 담긴 ‘맹강녀 전설’이 나왔을 정도.

그런데 그 폭정으로 인해 탄생한 음식이 있다?

중국 푸산(福山)의 한 요리사가 진시황을 위해

요리하다가 벌어진 실수로 탄생한 작장면,

타이완 출신의 여경래 셰프가

<역사저널 그날>에서 직접 재연했다!

알고 먹으면 황제의 음식이 되는

짜장면의 유래, 작장면을 알아본다.

 

▶ 만리장성의 진실 혹은 거짓

“진시황이 세운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보인다.”

이 문장은 참일까 거짓일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세운 것이 아니다.

심지어 달에서도 안 보인다. 그런데 만리장성은

왜 세계적으로 극찬 받는 ‘위대한 장성

The Great Wall’이 됐을까? 우리가 잘 몰랐던

만리장성의 진실 혹은 거짓을 알아본다.

중국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 만리장성!

6월 12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364회 유네스코 세계유산

아시아② <중국 만리장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2년 6월 12일 (일) 오후 09: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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