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413회 미리보기

 

버마 아웅산 묘소 테러,

살아남은 전두환의 선택

 

아웅산 묘소 테러, 구사일생 전두환

1983년, 버마(現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한국의 대통령 전두환을 노린 암살폭발사건이

일어난다. 일명 아웅산 묘소 테러. 당시 전두환은

서남아와 대양주 6개국 순방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 첫 번째 방문국이 버마였다.

순방 이튿날인 10월 9일, 전두환은 버마의

건국 영웅인 아웅산의 묘소에서 헌화 행사

일정을 준비 중이었다. 전두환의 아웅산 묘소

도착 예정 시간은 오전 10시 30분경!

우리 정부 각료들은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도열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굉음과 함께

대규모 폭발이 일어난다. 폭발로 인해

희생된 우리 측 인사만 17명. 전두환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는데...

끔찍했던 그날 속으로 들어가본다.

 

전격 공개! 아웅산 묘소 테러 뒷이야기

1983년 10월 8일, 해외 순방을 떠나는

전두환 내외를 위해 대대적인 환송 행사가

열렸다. 끝이 없는 환송물결, 국민들의

축복과 성원을 받으며 전두환 내외와 수행원들은

대통령 전세기에 오른다. 총 탑승 인원 162명.

그 중엔 정주영, 김우중, 이건희 등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경제인들도 있었는데... 그리고

이 비행기에 함께 탑승해 당시 대통령

해외 순방을 동행했던 또 한 사람!

외무부 서남아과 서기관으로 대통령

서남아 순방 당시 외교 관련 실무 총괄을

맡았던 최병효 전 駐노르웨이 대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들려주는

아웅산 묘소 테러 뒷이야기를 들어본다.

 

 

 

 

전두환이 순방을 떠나던 그날, 최병효 대사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는데...

그 이유는 순방 하루 전 도착한 외교 전문

때문이었다. 10월 5일, 외무부는 주스리랑카

대사로부터 북한의 화물선인 동건애국호가

현재 스리랑카에 체류 중이라는 내용을

전달받는다. 스리랑카 역시 대통령 방문이

예정된 곳. 놀란 외무부 장관은 급히

상황 파악을 지시하는데 더 충격적인

보고가 들어온다. 그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수상했던 조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예정대로 진행된 순방. 테러가 있었던

당일, 최병효 대사 역시 대통령의 아웅산 묘소

헌화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마침 공동 성명 수정을 요청한 버마 외무성으로

인해 그 자리에 가지 못했던 최병효 대사.

오전 10시 50분경 자신이 묵던 인야 레이크

호텔을 나서 버마 외무성으로 향하려던 순간,

피를 흘리며 뛰어 들어온 의전 사무관을 통해

충격적인 소식을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끔찍했던 그날의 참사, 그리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전두환의 예상치 못한 선택.

6월 4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1TV

<역사저널 그날> 413회

<버마 아웅산 묘소 테러,

살아남은 전두환의 선택>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3년 6월 04일 21: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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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412회 미리보기

 

전두환, 백담사로 향하다

 

백담사로 향한 전두환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지 8개월여 만에 국민 앞에 선다.

재임 기간 중 빚어진 자신의 과오와 비리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전두환은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며 연희동 자택을 떠난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강원도 산골의 백담사. 이곳은 만해 한용운이

출가했던 사찰이며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한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전두환의 백담사행이

알려지자,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지는데...

전두환이 백담사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궁지에 몰린 전두환

1988년 초,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전두환의 권력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4월엔 새마을운동본부를

이끌던 동생 전경환이 횡령죄로, 11월엔 전두환의

처남 역시 공금 횡령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제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민들은 5공화국 비리 단죄와

5.18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결국 야당의 주도로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청문회인 5공화국 청문회가 열리게 되고,

전두환을 궁지로 모는 증언들이 쏟아진다.

 

 

 

 

전두환의 잠 못 이루는 밤

국민들의 저항과 세상의 비난을 피해 백담사로

들어간 전두환 내외는 두 평 남짓의 화엄실에

머물게 된다. 이곳에는 밤마다 전두환을

잠 못 이루게 만든 소리가 있었다는데...

전두환을 힘들게 했던 소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소리의 마술사,

폴리아티스트가 생생하게 재현하는

그때 그 소리를 스튜디오에서 함께 들어본다.

 

전두환의 화려한 귀환

1990년 12월 30일, 전두환은 백담사에서의

769일간의 은둔 생활을 마치고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온다. 자택 앞에서 자신의 지지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그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밝았다.

백담사에 머물렀던 두 바다 만해(卍海)한용운과

일해(日海) 전두환, 수행자와 은둔자로 두 사람이

보여주었던 서로 다른 행보는

2023년 5월 28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412회

<부처님 오신 날 기획 -

전두환, 백담사로 향하다>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3년 5월 28일 21: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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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411회 미리보기

 

88서울올림픽 유치 전두환,

정주영에게 SOS를 하다

 

응답하라, 서울올림픽!

종합순위 4위에 빛나는 성공적인 올림픽,

88 서울올림픽. 당시 집집마다 호돌이 인형

하나쯤은 있었을 정도로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올림픽은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1980년대 초, 6.25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았던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에 불과했다.

선진국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임자, 올림픽 좀

진행해 봐!’ 박정희 대통령으로 시작해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올림픽 유치의 역사를 살펴본다.

 

 

 

 

무모한 도전, 올림픽을 유치하라

1981년 2월 26일, 대한민국은 IOC에 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정식 유치신청서를

제출한다. 그러나 88올림픽 개최지를 결정짓는

IOC 총회가 불과 7개월 남은 시점!

모두가 안 될 거라고 예상했던 때, 국내에서는

올림픽 유치 대책협의회가 열린다. 각계 부처의

수장들이 모여서 나눴던 회의 내용은 무엇일까?

반면, 88올림픽의 개최지로는 일본의 나고야가

유력했는데... 급하게 준비에 들어간 대한민국과

달리, 2년 전부터 착실하게 유치를 준비해왔던

일본. 상대를 이기기 위해 전두환 대통령은

부랴부랴 정주영 회장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았던 올림픽 유치

어느덧 100일 앞으로 다가온 IOC 총회.

그러나 표심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고.

기세는 나고야로 기울어지는 듯했다. 기울어가는

표심을 되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정·재계 인사들.

정주영 회장은 직접 IOC 위원들을 만나 설득하기

시작하는데... ‘개발 도상국도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시다!’

정주영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은 유치 예산도

별도로 받지 않고 자비를 들여 유치에 나선다.

특히, 정주영 회장은 유치 홍보영화를 위한

예산 1억 8천만 원을 내놓기까지! 그들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올림픽 유치에 힘을 쏟았을까?

 

다가오는 D-DAY

마침내 기나긴 유치 레이스의 결승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막판 스퍼트를 위해 바덴바덴에

홍보관을 차렸던 대한민국. 홍보관 설치 예산만

무려 1억 3천 2백만 원! 서울의 모습 및 교통,

국제 경기를 홍보하는 영상을 제작해서 틀었고,

한복을 입은 안내원들이 통역까지. 서울의 장점을

강력하게 어필하며 마지막 표심을 모으기

시작한다. 과연 그들의 노력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인가. KBS 스포츠 남현종 아나운서와 함께

알아본다.

 

방송일시 2023년 5월 21일 21: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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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410회 미리보기

 

각하의 화려한 외출-전두환, 레이건을 만나다

 

카터 VS 레이건, 그리고 전두환

1980년 11월 4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경쟁자는 현 대통령인 지미 카터와

로널드 레이건. 그 결과 압도적인 득표율로

레이건이 제40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런데 이날, 기쁨의 축배를 든 것은

레이건뿐만이 아니었는데... 바로 한국의

대통령 전두환이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 결함 많은

정권의 정통성 인정을 위해 미국의 승인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전두환은 카터가

아닌 레이건의 당선을 바랐던 것일까?

그 이유를 자세히 알아본다.

 

폭풍의 핵으로 떠오른 김대중 이슈

인권 외교를 주창하던 카터와는 달리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한 레이건. 레이건 당선으로

전두환에게 강력한 우군이 생기는 듯했으나

변수가 발생한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유혈진압을 사실상 묵인, 방조한

미국. 이로 인해 한국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미정서가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내 반미 분위기가 거세지자

친미 정권 전복을 우려한 미국. 서둘러 방법을

생각해내는데...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 구명에 나선다. 과연 전두환은

이러한 미국의 태도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각하의 화려한, 그러나 굴욕스러운 외출?!

김대중의 목숨으로 미국과 흥정을 벌인 전두환.

결국 레이건의 초청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1981년 1월 28일, 드디어 전두환의

방미길! 국내 언론은 대통령의 화려한 외출을

연일 특집 보도한다. 하지만 그 실상은

달랐는데... LA와 뉴욕을 거쳐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전두환.

그런데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 대통령의 도착을

환영하는 화려한 미국의 의장대도, 군악대도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전두환의 방미가

국빈 방문(State visit)이 아닌 공식 방문

(Official visit)이었기 때문이라는데...

강성규 아나운서와 함께 당시 전두환의

미국 방문 그날을 생생하게 들여다본다.

 

전두환의 취임식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에게 선물 보따리를

한아름 안겨준 전두환.

결국 백악관 친구 만들기에 성공하는데,

그리고 그 대가로 한 가지 미국에 요구한 것이

있었다. 바로 한 달 뒤 예정된 제12대 대통령

취임식에 미국의 고위급 축하 사절을

보내달라는 것. 그리고 1981년 3월 3일,

성대하게 치러진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식에는

9,000여 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미국의 축하 사절 여부! 과연 미국은 전두환의

요구대로 고위급 인사를 보내왔을까?

그 결과는 5월 14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410회

<각하의 화려한 외출-

전두환, 레이건을 만나다>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3년 5월 14일 21: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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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409회 미리보기

 

전두환의 특명, 국풍 81

 

대한민국에 새로운 바람이 불다?

1981년 5월 28일, 대규모 축제 국풍 81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시작됐다.

‘전국 대학생 민속 국학 큰 잔치’라는 부제로

겨레의 멋과 흥, 신바람을 내세운 이 축제에는

전국 대학생 6천여 명을 포함하여

연인원 천만 명이 참가한다. 개국 이래

최대 규모, 전대미문의 관제 축제, 국풍 81.

원로 배우 강부자의 기억 속에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국풍81에서 탄생한 전국 팔도 먹거리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것, 바로 먹거리.

전주? 비빔밥! 춘천? 막국수! 이렇게 지역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음식은 언제부터

유명세를 타게 된 걸까? 바로 국풍 81의

<팔도 미락정>에서 소개되었기 때문.

그중에서도 천안과 통영 하면 떠오르는

음식을 직접 찾으러 다녀온 이가 있다.

걸어서 국풍81 속으로?!

국풍81 때 소개된 먹거리를 함께 살펴본다.

 

 

 

 

배우 강부자 눈물의 의미는?

1980년 11월 30일, 전두환의 남자 허문도가

주도한 언론 통폐합으로 동양방송 TBC는

여의도로 사옥을 옮긴 지 3개월 만에 KBS에

흡수되고 만다. 하루아침에 정든 직장을

떠나야만 했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KBS로 자리를 옮겨야 했던 사람들.

TBC 출신이었던 배우 강부자가 눈물로

증언하는 그날의 생생한 이야기.

그렇다면, 도대체 국풍81과 언론 통페합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화려했던 축제, 하지만 모든 것이 눈속임이었다

국풍81의 개막 전날인 1981년 5월 27일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계엄군에게 진압된 지

꼭 1년이 되던 날이기도 했다.

당시 서울대학교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추모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졌고

투신한 학생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 다음날 신문에서는 어떻게

보도되었을까? 그리고 국풍 82, 국풍 83으로

축제가 이어지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2023년 5월 7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409회

<전두환의 특명, 국풍81>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3년 5월 07일 21: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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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408회 미리보기

 

전두환, 대한민국을 탈취하다

 

‘장포스’가 떴다

김영옥, 나문희, 사미자.

세 배우의 공통점은?! 알고 보면 성우 출신!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성우 출신 배우가 있다.

바로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장태완 장군 역할을 맡았던 성우, 김기현!

탁월한 발성과 연기력으로 MZ세대들에게

‘장포스’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가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한다.

그가 들려줄 이야기는 과연 무엇?!

 

명대사에 숨겨진 이야기

김기현 성우의 열연 덕분에 녹화장은

내내 웃음과 탄식이 끊이질 않았다고 하는데...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장면. ‘야 이 반란군 XX야!’ 벼락같은

카리스마를 뽐내며 장태완 장군을 연기한

김기현 성우. 1979년 12월 12일 그날,

수경사령관 장태완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

김기현 성우와 함께 긴박한

그 날 속으로 들어가 본다.

 

 

 

 

전두환, 정승화 포섭 작전을 벌이다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 세력은

군사 반란을 준비한다. 그 첫걸음은 당시

참모총장이던 정승화를 포섭하는 것! 그러나

정승화 총장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포섭에

실패한 전두환은 장태완 장군에게 손을

내민다. 쏟아지는 뇌물과 회유.

“장태완 장군은 절대 이런 거 안 받죠”라고

김기현 성우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눈앞의 사리사욕보다 군인으로서 명예로움을

택했던 인물. 과연 장태완 장군은 그의 뜻대로

신군부 세력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자세한 이야기는 4월 30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_408회>

‘전두환, 대한민국을 탈취하다’>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3년 4월 30일 21: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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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407회 미리보기

 

10.26 그 후, JP 대통령의 기회를 놓치다

 

영원한 2인자 JP

5.16군사정변의 주도세력 중 한 명이자

박정희 정권의 2인자로 자리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이하 JP). JP를 떠올리면

영원한 2인자, 노회한 정치 9단,

어록 제조기 등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사실 그는 5.16의 실질적인 설계자로 1인자가

될 수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1인자를 결정한 건 나이순?! 때문에 당시

주도세력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박정희가

1인자가 됐다고... 여하튼 군사정변 후 JP는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초대부장을 지내고

국무총리를 역임하는 등 박정희 정권하에서

권력을 키워나간다. 그러던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저격한다. 18년 간 유지되던 1인자의 자리는

공석이 되고, 서둘러 대통령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JP는 대통령권한대행이었던

최규하와 함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다. 하지만 JP는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JP의 2인자 처세술

박정희에서 김영삼, 김대중에 이르는

세 정권에서 무려 43년 동안 2인자의 자리를

지킨 JP. 총성 없는 전쟁터라 불리는

정치판에서 JP가 이토록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일까? 역사저널 그날의

자칭 2인자(?) 이광용 아나운서가 JP의 처세술을

소개한다. JP의 처세술이 얼마나 유명했으면

이를 분석한 책도 있다는데... ‘2등이 ~ 있다?’,

‘우두머리와는 ~ 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을

알아본다. 그리고 외유와 칩거, 은퇴 그리고

정계 복귀를 반복하며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았던 JP의 정치 인생을 처세술로 살펴본다.

 

 

JP의 의외의 면면, 박정희 VS JP

JP는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했던 18년의

세월 동안 2인자로 자리했다. 하지만 끈끈하기만

해보였던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내세웠던 3선 개헌.

JP는 이에 반대하며 박정희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데...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박정희 대통령과 JP의 오묘한 관계를

알아본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과 JP, 두 사람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서로 달랐다고 하는데...

이를 추측해볼 수 있는 장소에 최원정 아나운서가

직접 다녀왔다! 그곳은 어디일까?

 

JP 대통령의 기회를 놓치다?

결국 JP는 3선 개헌에 찬성하며

박정희 대통령과의 관계를 회복한다. 항간엔

그 대가로 박정희 대통령이 후계자 자리를

약속했다는 풍문도 돌았다. 하지만 3선 개헌이

아니더라도 JP가 대통령이 될 수 없었던 이유가

또 있었다. 바로 미국의 태도! 당시 대한민국

부는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상황.

미국 입장에서 JP는 대통령으로 좋은 카드가

아니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현대사를 주름잡았던 김종필의

파란 많은 정치 인생, 그 이야기는 4월 23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407회 <10.26 그 후,

JP 대통령의 기회를 놓치다>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3년 4월 23일 (일) 오후 09: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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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405회 미리보기

 

천마총 발굴 50주년 기획

박정희의 메모, 경주를 개발하라

 

특명! 제155호를 발굴하라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은 경주 개발을

명령한다. 천년의 고도 경주를 관광 수도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사적 정비·고분 발굴의 시작!

박정희 대통령은 틈틈이 경주를 들러

발굴 진행 상황을 보고받고,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을 독려했다.

1973년 4월, 첫 번째 고분의 발굴작업이

시작된다. 경주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비교적

작은 크기의 155호 고분이었다. 지역주민들과

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발굴.

그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신라시대의 금관과

더불어 11,426점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유물이

있었는데, 자작나무 껍질에 새겨진 ‘천마’!

이 유물의 이름을 따서 마침내 155호분의 명칭이

정해진다. 천마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천마총은 시험용이었다?!

경주 개발을 명령한 박정희 대통령의 목표는

사실 ‘황남대총 발굴’. 그러나 대릉원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무덤인 황남대총은, 당시의

발굴 기술로는 무리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당시

발굴단장이던 김정기 선생의 계책! ‘천마총을

먼저 파보겠습니다!’ 비교적 작은 크기였던

천마총을 시험 삼아 파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현장에 투입된 발굴 요원들! 과연

그들은 무사히 발굴에 성공할 수 있을까?

 

박정희의 경주 사랑

술을 즐겼던 박정희 대통령. 소문난 애주가인

그가, 특별한 지시를 내렸던 술이 있다?!

바로, 경주를 대표하는 민속주인 ‘경주 법주’.

외국 손님을 접대할 한국의 대표 만찬주가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던 박 전 대통령은,

한 주류 회사에게 법주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렇게 재탄생한 ‘경주 법주’!

이 법주를 사랑한 박정희 대통령은 은밀한

지시를 내렸다고 하는데... 박정희 대통령과

경주 법주에 얽힌 이야기를

이광용 아나운서와 함께 알아본다.

 

천마총 발굴 비화 전격 공개!

우여곡절 끝에 첫 삽을 뜬 천마총!

그러나 발굴 과정은 험난하기만 했다는데...

천마총 발굴 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과 함께 알아본다.

자세한 이야기는 4월 9일 밤 9시 40분

KBS1TV <역사저널 그날 405회

‘천마총 발굴 50주년 기획’ – 박정희의 메모,

경주를 개발하라>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3년 4월 09일 21: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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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404회 미리보기

 

공영방송 50주년 기획

잘 살아보세⑤ 작전명 백곰, 미사일을 개발하라

 

박정희 대통령의 극비 메모

1971년 12월 27일,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ADD)에

“1975년까지 사거리 200km의

지대지 미사일을 개발하라”는

극비 메모를 전달한다. 하지만 북한의

무력 도발이 이어지던 당시 대한민국의

무기 제조 기술은 그야말로 제로! 1971년,

ADD의 첫 임무였던 번개사업을 거치며 이제

겨우 우리 손으로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미사일을 만들어라?! 주어진 시간은

고작 4년! 과연 대한민국의 미사일 개발은

성공할 수 있었을까?

 

미사일 개발, 결심의 이유

4년 만에 미사일을 개발하라는 무리한 요구.

대한민국의 열악한 상황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대체 왜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일까? 그 이유는 요동치고 있던

국제정세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색이

짙었던 미국은 베트남 철수의 명분으로

아시아 국가에게 스스로를 지킬 것을

요구하는데... 게다가 공산주의인 중국과

교류까지 하는 상황?! 위기에 봉착한

박정희 대통령! 미사일 개발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국제정세를 자세히 알아보자.

 

 

 

 

방위성금 모금 행사

미사일을 만들어오라는 명령은 내렸는데...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은 어디서

충당할까?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모금!

정부는 1968년 1.21 사태 이후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반공성금을 걷기 시작한다.

이 모금운동은 1973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름하야 ‘방위성금 모금운동’!

‘반공’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자주국방’ 이 모두의

염원이었던 시절, 과연 방위성금은 얼마나

모일 수 있었을까? 그때 들려오는

뽀빠이 이상용의 시그니처 멘트?!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국군 장병 여러분 필! 승!!

군인이 사랑한 남자, 이상용이 들려주는 그때

그 시절 방위성금 이야기를 함께 들어본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미사일, 백곰! 하지만 백곰의

탄생은 순탄치 않았다. 4년 안에, 그리고 북한과

미국 몰~래 개발해야 하는 상황. 불가능에

가까웠던 상황에서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진들은

과연 어떻게 연구를 이어갔을까? 백곰 사업에

참여했던 전 국방과학연구소장 안동만 박사가

들려주는 그 생생한 뒷이야기!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방위 산업 이야기는 4월 2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404회 <공영방송 50주년 기획 –

잘 살아보세⑤ 작전명 백곰,

미사일을 개발하라>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3년 4월 02일 21: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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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403회 미리보기

 

공영방송 50주년 기획 잘 살아보세 4

박정희 특명, 대형 조선소를 건설하라

 

무모한 도전의 시작

세계 최강 대한민국 조선 산업! 지금은

수출 효자 산업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1970년대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조선업은

성공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기업인

정주영의 모험정신이 만나 시작되는

대한민국의 조선 산업. 현재 세계 조선

수주량 1위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과연

어떤 노력이 숨겨져 있을까?

 

500원 지폐로 이뤄낸 조선 신화

대형 조선소 건설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막대한

초기 투자 자금. 해외 차관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정주영 회장이 들고 간 것은

다름 아닌 사업 계획서와 조선소가 건설될

울산 미포만 백사장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차관 협상이 좌절될 즈음, 정주영 회장이

꺼내 든 것은 500원짜리 지혜 한 장!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성공 신화는

‘500원’ 지폐에서 시작됐다. 조선소도,

기술자도, 초기 자금도 없는 상태에서

그리스 선박왕 리바노스에게 거대한

유조선 사라고 다가간 ‘봉이 정선달’

정주영 회장. 과연 그는 이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을까?

 

상상초월 규모! 애틀랜틱 배런호

조선업 불모지에서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초대형 유조선 애틀랜틱 배런호.

이 배의 적재중량만 해도 무려 26만 톤에

달한다는데... 숫자만으로는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26만 톤 급 배의 크기. 이 거대한

배는 어떻게 물에 뜨는 걸까? 궁금증을

해결해 줄 역사저널의 과학 선생님 등장!

간단한 실험을 통해 배가 뜨는

원리에 대해 알아본다.

 

현재도 계속되는 조선업의 하청문제

대한민국 조선 산업 성장의 숨은 영웅인

현장 노동자들. 하지만 초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현재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존재한다. 작업, 또 작업...

조선 산업 성장의 밑거름이 된 수많은

현장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해 본다.

한국 조선 산업이 걸어온 길, 2023년 3월 26일

일요일 저녁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403회

<공영방송 50주년 기획 – 잘살아 보세 ④

박정희 특명, 대형 조선소를 건설하라>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일시 2023년 3월 26일 21:40

 

 

[출처]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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